『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에로스와 우울증은 대립적 관계에 있다. 에로스는 주체를 자신에게서 잡아채어 타자를 향해 내던진다. 반면 우울증은 주체를 자기 속으로 추락하게 만든다. 오늘날 나르시시즘적 성과주체는 무엇보다도 성공을 겨냥한다. 그에게 성공은 타자를 통한 자기 확인을 가져다준다. 이때 타자는 타자성을 빼앗긴 주체의 에고를 확인해주는 거울로 전락한다. 이러한 인정의 논리는 나르시시즘적 성과주체를 자신의 에고 속에 깊이 파묻혀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과정에서 성공 우울증이 발생한다. 우울한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 속으로 침몰하고 속에서 익사한다. 반면 에로스는 타자를 타자로서 경험할 있게 하고, 이로써 주체를 나르시시즘의 지옥에서 해방시킨다. 에로스를 통해 자발적인 자기 부정, 자기 비움의 과정이 시작된다. 사랑의 주체는 특별한 약화의 과정 속에 붙들리지만, 이러한 약화에는 강하다는 감정이 수반된다. 물론 감정은 주체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타자의 선물이다.

 

 

성과사회는 금지 명령을 발하고 당위('해야 한다') 동원하는 규율사회와 반대로 전적으로 ' 있다'라는 조동사의 지배 아래 놓여있다.

 

' 있어'라는 구호는 엄청난 강제를 낳으며 성과주체를 심각하게 망가뜨린다. 성과주체는 자가 발전된 강제를 자유라고 여기며, 강제를 강제로 인식하는 실패한다. ' 있어' 심지어 ' 해야 '보다 강제력을 행사한다. 자기 강제는 타자 강제보다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게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랑은 긍정화되고 결과 성과주의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성애로 변질된다. 섹시함은 증식되어야 하는 자본이다. 전시가치를 지는 신체는 상품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이질성이 제거된 타자를 사랑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다만 소비할 뿐이다. 그러한 타자는 성적인 부분 대상들로 파편화되기에 이상 하나의 인격성을 지니지도 못한다. 성적 인격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사랑은 긍정화되어 향락의 공식으로 여겨진다. 사랑은 무엇보다도 안락한 감정을 생성해야 한다. 사랑은 이상 행위도, 이야기도, 드라마도 아니며, 흔적을 남기지 않는 기분이요 흥분이다. 이제 사랑은 상처와 급습과 추락의 부정성을 알지 못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너무 부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부정성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을 이룬다.

 

속성 섹스의 시대, 즉흥적 섹스, 긴장 해소를 위한 섹스가 가능한 시대에는 성애 역시 모든 부정성을 상실한다. 부정성의 완전한 부재로 인해 오늘날 사랑은 소비와 쾌락주의적 전략의 대상으로 쪼그라든다. (..)오늘날의 사랑에는 어떤 초월성도, 어떤 위반도 없다.

 

사람들은 삶을 완결지을 모르기 때문에 죽는 법도 잊어버렸다. 성과주체 역시 결론을 맺지 못하고, 완결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그는 많은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바스라진다.

 

생존하는 자는 살아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고 죽기에는 너무 살아 있는 산송장과 비슷한 존재다.

 

"하나의 형식에서 다음 형식으로 나아감에 따라, 그러니까 유혹에서 사랑으로, 욕망에서 성애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저 단순한 포르노로 전진해감에 따라, 그만큼 강력하게 비밀과 수수께끼는 위축된다." - 보드리야르

 

근대적 자아는 자신의 소망과 감정을 점점 상상적인 방식으로, 상품과 매체 이미지를 통해서 지각한다. 그의 상상력은 무엇보다도 소비재 시장과 대중문화에 의해 규정된다.

 

무한정한 선택의 자유는 오히려 욕망의 종말을 재촉한다. 욕망이란 언제나 타자에 대한 욕망이다. 결여의 부정성이 욕망을 자라게 한다. 욕망의 대상인 타자는 선택의 긍정성 속에 붙잡히지 않는다. "파트너 선택의 기준을 분명히 표현하고 정교화하는 무진장한 능력" 갖춘 자아는 이상 욕망하지 않는다.물론 소비문화가 미디어 상상적 이미지와 이야기 들을 통해 새로운 욕구와 소망을 산출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욕망은 소망과도, 욕구와도 구별되는 어떤 것이다.

 

경계와 문턱이 사라짐과 동시에 타자에 대한 환상도 사라진다. 문턱의 부정성이, 문턱의 경험이 없는 곳에서는 환상도 위축된다. 오늘날 예술과 문학이 직면한 위기의 원인은 환상의 위기, 타자의 소멸, 에로스의 종말에서 찾을 있다.

 

 

이론은 세계를 완전히 다르게, 완전히 다른 속에서 드러나게 하는 근본적 결단이다. 이론은 무엇이 여기에 속하고 무엇이 속하지 않는지, 무엇이 존재하고-혹은 존재해야 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지를 결정하는 원천적, 근원적 결단인 것이다. 이론은 고도로 선택적인 서사이며, "전인미답의 지대" 헤치며 열어가는 구별의 숲길이다.

 

이론은 사물이 서로 뒤섞이고 통제할 없이 증식하는 것을 막아주며, 이로써 엔트로피의 감소에 기여한다. 이론은 세계를 설명하기 전에 세계를 정제한다. 우리는 이론이 제의나 예식과 공통의 기원을 지닌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모두 세계에 형식을 부여한다. 사물들의 흐름을 일정한 형태로 빚어내고, 이들이 범람하지 않도록 경계를 만들어준다. 오늘날 정보의 더미는 형식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에로스는 사유를 이끌고 유혹하여 전인미답의 지대를, 아토포스적인 타자를 거쳐가게 한다. 소크라테스의 말이 지니는 마력은 아토피아의 부정성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아포리아(해결 불능의 난제) 귀착되지 않는다. 전승되어온 견해와 달리 플라톤은 포로스가 에로스의 아버지라고 주장한다. 포로스는 길을 의미한다. 사유는 과감하게 전인미답의 지대 속으로 들어가지만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에로스는 포로스의 아들답게 사유에게 길을 일러준다.

『소송』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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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여학생들이 첫 수업에 오면 나는 그 즉시 나한테 맞는 아이가 누구인지 알지. 마크 트웨인의 어떤 이야기에 이런 대목이 나와. 트웨인이 황소를 피해 달아나다 나무에 올라가 숨자 황소가 그를 쳐다보며 '댁은 내 밥이올시다, 선생' 하고 생각하지. 음, 내가 수업에서 그런 아이를 보면 그 '선생'이 '아가씨'로 바뀌지.생물학이 사람들에게 저지른 위대한 장난은... » 내용보기

『피로사회』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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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조르주 페렉

어떤 날에는 비좁은 공간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두 방을 넓히고, 벽을 부수고 복도와 벽장을 들쑤시고 물건들을 들어내고 드레스룸 모양을 그려보고 옆집을 터서 연결해 볼까 생각도 해보지만 허사였다. 번번이 이제는 그들의 운명이 되어버린 원래의 35제곱미터로 되돌아오고 말았다.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달콤하게 빠져드는 부푼 몽상과 ... » 내용보기